우리가 현대적 저널리즘으로 간주하는 것은 17세기 초에 대화(conversation)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영국에서는 커피점, 나중에는 선술집과 같은 공공 장소에서 나타났다. 미국에서도 '선술집'에서 나타났다. 이 곳에서 선술집 주인들은 여행자들로부터 활발한 대화를 이끌어내는 호스트 역할을 했다. (33쪽)
이 첨단기술에 의한 상호교류는 400년 전에 선술집과 커피점에서 태어난 최초의 저널리즘과 매우 유사한, 대화에 가까운 저널리즘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저널리즘의 기능은 디지털 시대에도 근본적으로 변하지는 않았다. 기술은 다를지도 모르지만, 기초를 이루는 원칙은 똑같다. 언론인은 무엇보다 먼저 검증에 힘쓰고 있다. (38쪽)
빌 코바치 등이 저술한 <저널리즘의 기본 요소>란 책을 흥미롭게 읽고 있다. 이 책을 구한 지는 꽤 되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최근 논문작업 때문에 새롭게 읽게 됐다. 읽으면서, 참 괜찮은 책이란 생각을 하고 있다.

특히 눈에 띈 구절이 바로 윗 부분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원래 뉴스의 출발점은 대화였다. 뉴스는 누군가와 '어떤 사건'에 대해 끊임 없이 얘기하고, 또 토론하면서 덧붙여지는 것이다.

흔히 온라인 저널리즘, 특히 참여형 저널리즘에서는 '강의형 저널리즘에서 대화형 저널리즘으로' 발전하는 것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그건 '독자의 재발견' 내지는 '소외됐던 독자의 제자리 찾기'라고 하는 게 맞을 듯 싶다.

따라서 17세기 뉴스의 중심지였던 선술집 주인들이 '대화를 이끌어내는 호스트' 역할을 했듯이, 디지털 시대 뉴스를 주도하는 사람들 역시 대화의 중재자가 될 필요가 있다.

온라인 저널리즘의 독자 참여가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그 동안 기자들이 주도했던 저널리즘 관행이 예외적인 현상인 것이다. 적어도, 언론이나 뉴스의 출발점에 눈을 돌리면, 그렇다는 얘기다.